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르 보호령 (문단 편집) === 독립 ===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저물어가던 [[1945년]], 4대 승전국인 [[미국]], [[프랑스]], [[영국]], [[소련]]은 패전국 독일을 4등분하여 서로 맡은 지역을 통치한다. 원래 [[자를란트]]는 미군의 통치 아래 놓여있었는데, 1945년 7월 전승국 사이의 점령지역 재조정 과정에서 [[프랑스]]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. 자르 지방은 본디 [[프랑스]]와 [[독일]]의 접경지대로 양국의 문화적 요소가 공존하는 지역이었고, [[1919년]] [[베르사유 조약]]에 따라 [[자르 분지 지역]]이라는 프랑스의 관리 하의 [[국제 연맹]] 보호령이었던 때도 있었다. 이곳의 풍부한 [[석탄]] 및 발달한 광공업은 전쟁 기간 중 황폐화된 프랑스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이었기에[* 그래서 [[서독]] 정부도 나중에 "[[석탄]]으로 보상할 테니 자르 돌려주셈"했지만 프랑스의 반응은... 하지만 프랑스는 후술했듯 여러 이유 때문에 결국 석탄을 받고 자를란트를 서독에 돌려주었다. 1차대전 후 프랑스가 자르를 독일로부터 분리하여 보호령을 수립했을 때도 자르의 탄광들과 경공업을 프랑스 재건에 사용하려 한 것이 배경이었다], 1947년 초 프랑스는 이 자르지역을 점령구에서 자치구역으로 전환시킨다. 이미 자치구역으로 전환 전이었던 1946년 12월, 자를란트 관세, 경제, 통화 동맹을 설립함으로 자를란트를 프랑스의 경제권에 편입, 자르 점령구 내에서 판매되는 독일산 제품들에 대해 각종 [[관세]]를 매기는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그리 놀랄만한 조치는 아니었지만, 당연히 독일 내부에서 항의와 분노의 목소리는 꽤 컸다.[* 프랑스는 자르를 돌려달라는 서독의 요구에 "우리는 [[프로이센-프랑스 전쟁|보불전쟁]], [[제1차 세계 대전|1차 대전]], [[제2차 세계 대전|2차 대전]]까지 지난 70년 동안 3번이나 독일에 침략당했기에 완충지대가 필요하다."고 주장했고 [[미국]]을 비롯한 연합국도 이에 동조해줬다. 다만 그 이전 역사까지 생각하면 프랑스도 독일을 침략한 적이 많다. 애시당초 [[30년 전쟁]]으로 갈기갈기 찢긴 독일권에 깡패짓을 해댄게 프랑스다.] 그리고 1947년 6월 자르 지역은 자르 마르크(Saar Mark)라는 자체 화폐를 발행한 데 이어, 11월부터는 아예 [[프랑스 프랑]]과 1대 1로 페그된 자르 프랑(saar franc)을 발행하고,[* 이는 모나코 프랑처럼 자를란트 내에서 프랑스 프랑의 사용이 가능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. 실제 당시의 자를란트에서는 프랑스 프랑을 사용할 수 있었다.] 자체 헌법과 자체 정부까지 세우면서 외견상 독립국의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한다. 그러나 말이 [[자치정부]]이지 사실상 프랑스의 의중에 의해 좌우됐으며, 의회를 통해 선출되는 주 총리를 제외한 모든 정부 요인도 프랑스 정부에서 임명한 사람들이었던 데다가, 의원 선거조차도 친독 정당은 출마가 금지되는 등 프랑스의 [[괴뢰국]]이나 다름없는 신세였다. 비슷한 사례로 [[스트라스부르]]의 라인강 너머에 있던 독일의 도시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Kehl|켈]](Kehl)은 1945년 프랑스에 합병되어 독일인 주민이 추방되었다가, 1953년에 서독으로 복귀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